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층이 꼭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이슈가 있다. 바로 부모님과 미래에 다가올 나 자신의 간병 문제다. 간병 수발은 본인과 가족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거대한 쓰나미와 같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본인뿐 아니라 수발을 드는 가족에게도 큰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간병 쓰나미를 미리 경험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이미 3500만명을 넘어섰고, 80세 이상자도 서울 인구보다 많은 1100만명에 달한다.
거동이 불편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고령자는 2000년 218만명에서 2018년에는 3배나 많은 643만명까지 늘어났다. 여기에 치매환자도 500만명을 넘어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에 걸린 노부모를 돌보는 가족 간병인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
류재광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 연구원
시설이 아닌 자택에서 가족과 지내는 치매 노인이 증가하다 보니 지역주민과 트러블이 생기지 않도록 지역사회가 치매 노인과 공존할 방법을 찾는 것도 큰 과제다. 직장을 다니면서 부모님을 간병하는 경우도 많아 간병 문제로 부부, 형제 간에 갈등이 깊어지기도 한다. 간병 수요가 급증하자 요양시설의 간병 인력 부족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고, 일본 정부는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동남아에서 간병 인력을 수입 중이다.
◆치매 환자를 위한 일본의 노력
간병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2000년에 3조6000억엔(약 36조원)이던 국가 간병비용은 2017년에 10조8000억엔까지 늘어났다.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개인이 부담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월 보험료 또한 급격히 인상됐다. 2000년 초 2911엔(약 2만9110원)이던 월 보험료가 지금은 5514엔(약 5만5140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러한 간병 쓰나미 속에서 눈길을 끄는 일본 정부의 정책이 있다. 무엇보다 치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다. 일본후생노동성은 이미 2004년 치매가 ‘어리석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부정적인 시각을 준다고 하여 의학적으로 인지장애라는 의미의 ‘인지증(認知症)’이란 공식 용어로 바꿨다. 치매를 ‘노망’이나 ‘망령’이 아닌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이 서로 정보 교환도 하고 격려하며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인지증 카페’도 지역 곳곳에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가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익숙한 자택에서 의료와 간호,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간병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했다.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의사와 간호사, 요양보호사가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밤늦은 시간이나 위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교대 근무하며 24시간 대응할 수 있도록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치매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 필요해
우리도 일본의 상황과 대책을 교훈 삼아 간병 쓰나미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될 만큼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국가 자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갈수록 늘어나는 치매와 간병비 부담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 ‘한국인의 은퇴준비 2018’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절반 정도(48%)는 노후 간병과 요양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로 간병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노후에 자칫 간병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고 건강할 때 하루빨리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