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주최로 요양노동자 노동현장 고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요양보호사의 인권 침해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립요양원 요양보호사인 박 모씨는 요양원 입소자의 폭언을 참다 못해 방어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2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박씨는 이어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등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시립요양원에서 11년 넘게 근무한 박 씨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요양보호사의 인권도 지켜져야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지난 1월 2일 어르신의 식사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아주 심한 욕설을 들었다”며 “어르신을 말리는 과정에서 어르신의 가슴 팍에 손을 댄 게 문제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아울러 “평소에도 현장에는 나 뿐만 아니라 폭언 또는 폭행을 당하는 다른 요양보호사들이 많이 있다”며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식판을 던지고 심지어 성희롱을 하는 등 무수히 많은 사례가 있지만 노인 학대로 오해 받을 수 있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이어 “어르신들의 인권이 있듯이 요양보호사의 인권도 있다”며 “어르신들이 어떤 행동했을 때 요양보호사가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과 요양보호사를 지킬 수 있는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데일리안은 해당 요양원 측의 입장도 들어보기 위해 연락을 취해봤지만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로서는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답변 만이 돌아왔다.
요양서비스노조는 박 씨의 경우처럼 요양보호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담은 증언을 모아 공개했다. 노조가 발표한 ‘요양보호사 노동환경 실태 조사’를 보면, 조사에 참여한 전국 요양보호사 541명 가운데 81.3%가 일하면서 육체적 상해 또는 정신적 상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노우정 요양서비스노조 위원장은 "요양보호사들은 대부분 여성이고 평균 연령이 58세"라며 "이 분들의 연세도 적지 않은데, 침을 뱉거나 쌍욕을 하고 할퀴어도 어떤 대응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어르신을 진정시키려고 팔을 잡는 등의 행동을 하면 노인 학대로 취급 받을 수 있고 그 이후에는 징계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보호자들에게 폭행으로 고소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위원장은 “장기요양보험제도는 2008년부터 시행돼 올해로 13년째지만 어르신들의 폭언 또는 폭행에 요양보호사가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은 전혀 없는 상태다”며 “요양보호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인권 가이드라인 등 매뉴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장기요양보험제도 설계 안에 요양보호사는 아예 존재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요양보호사의 자기방어권 등이 지켜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만 규정할 뿐, 보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아도 처벌 규정이 없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변수지 노무사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요양기관장은 이용자(어르신)가 요양보호사에게 폭언ㆍ폭행 등의 행위를 할 경우 적절한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며 “그러나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처벌과 같은 제재는 규정돼 있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관장에게 요양보호사에 대한 보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보호가 필요한 경우 업무 중단, 업무 전환, 휴식 시간 부여 등 최소한의 조치가 현장에서 실제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일부 이용자(어르신)와 보호자의 인식 개선 역시 주요 과제"라면서 "현재 제도에서는 이용자(어르신)의 폭언·폭행에 대한 어떤 제재도 없는 상황인 만큼 최소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인권 교육 혹은 요양서비스 제공 제재 등 인식 개선을 위한 정책적 접근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